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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개조해 전통 찻집을 운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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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162-1 / 전원속의 내집
오랜 시간 마을에 자리하던 텅빈 구옥 한 채. 그곳에선 지금 꽃내음 가득한 차향기가 피어오르고,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새어나온다. 구옥에 따스한 숨결을 불어넣은 여자, 유혜란 씨를 찾아 마실길에 올랐다.

 

취재 전선하 사진 변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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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춘천의 작은 마을에서 전통 찻집을 운영하고 있는 유혜란 씨. 여유로운 미소와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진 그녀의 첫인상은 다소곳하고 꾸밈없었다. 도시에서 살다 시골로 들어오는 이들은 저마다 그럴 만한 연유를 안고 있다. 그녀 또한 그러하듯, 숨은 속내를 내비친다.

 

“마흔이 넘어서 알게 됐어요, 내가 참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았다는 걸.”

 

강남 엄마, 시골 내려온 사연 

이곳에 오기 전, 혜란 씨의 삶은 그야말로 탄탄대로였다. 20대엔 국내 도예계의 대모로 불리는 황종례 교수의 지도 아래 도예가로서의 꿈을 펼치기도 했었고, 이름만 대면 알만한 국내 유명 구두 브랜드를 이끄는 디자이너로도 활동했었다. 그리곤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요즘엔 ‘엄마’에도 두 종류가 있다고 한다. ‘그냥 엄마’와 ‘강남 엄마’. 그녀는 소위 ‘강남 엄마’란 이름에 익숙했던 사람이었다. 어느새 일상이 되어버린 인생의 싸이클들은 수년간 변함없이 지속되었다. 우연히 한 다큐멘터리를 접하기 전까지는.

 

“대안학교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를 보게 됐어요. 서울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교육환경을 접하며 적잖은 충격에 빠졌죠. 또 학창시절 친구가 그곳의 교사로 활동하는 게 아니겠어요. 반가우면서도 아차 싶었죠. 제가 살아온 인생이 세상의 정답인줄로만 알고 있었거든요.”

 

돌아보니, 그간 놓치고 살던 부분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와 따뜻한 저녁 밥상을 먹어본 지가 언제더라? ’, ‘디자이너란 이름으로 사는 것이 누구를 위한 삶일까….’ 혜란 씨는 이곳에 오기 이전의 삶을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이었다 자평했다. 그렇게 채워온 인생의 퍼즐을 모두 쏟아낸 지금, 그녀는 다시금 새 조각들을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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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학교에서 만난 사람들 

다큐멘터리로 시작된 대안학교와의 인연은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졌다. 우연치곤 너무나도 필연적인 일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학창 시절 친구가 대안 학교 교사로 있다고 하니, 하루아침에 관심이 믿음으로 변해버렸죠. 또한 모든 일엔 다 뜻이 있기 마련이라고, 지인 중 한 분이 간디학교 선생님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단순히 우연으로 넘겨 버리기엔 너무도 귀한 인연이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새로 학교를 다니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무엇보다 아이 스스로의 결정이었다. 다행히 아들 산이는 간디학교에 다닐 날을 엄마보다 더 손꼽아 기다렸다.

 

“컴퓨터를 제일 재밌는 장난감으로 알고 살던 아이가 이젠 친구들과 산으로 강으로 뛰어 다니느라 정신이 없어요. 난생 처음 부모 곁을 떠나 친구들과 단체 생활을 해나가면서 자존감이 무척이나 강해졌지요. 아이나 저나 이 선택을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결정이라 생각하며 삽니다.”

 

혜란 씨 역시 많이 변했다. 특히나 대안학교에서 만난 학부모들의 다양한 이력과 가치관들을 접하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살 수도 있구나 싶었어요. 서울에선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을 직접 면전에서 경험하게 되니 어찌나 신기하던지…. 그 때부터 인생이 참 재밌게 느껴지더라고요. 없던 용기가 마구마구 생겨나기 시작했으니까요.”

 

그렇게 얻게 된 용기는 그 후 여행 삼아 들렀던 춘천의 한 마을에서 가감 없이 발휘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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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보다 어려웠던 구옥 개조기

사과와 막국수로 유명한 동네라지만 혜란 씨는 마을 곳곳을 둘러보는 일에 더 빠져있었다. 그리곤 정해진 운명처럼 텅 빈 구옥 한 채에 발길을 멈췄다.

 

“오랜 시간 비워져 있었는지 사람 키만 한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나 있었어요. 그런 와중에서도 하얗게 만발한 복사꽃들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마치 무릉도원을 만난 것만 같았죠.”

 

그렇게 만난 구옥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어렵게 수소문해 찾은 집 주인과의 만남. 그것이 귀촌의 결정적 발단이었다. 애초에 집을 팔 생각이 없던 집 주인을 매일 같이 찾아가 설득하길 수개월, 그간의 정성이 통했는지 그토록 원하던 구옥을 어렵사리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구옥을 손에 넣긴 했지만 막상 개조를 시작하려니 눈앞이 캄캄했다. 개조보다 먼저 한옥을 아는 것이 급선무였다.

 

“영상감독으로 일하고 있는 친구가 일전에 한옥과 관련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것이 떠올랐어요. 친구 덕분에 많은 자료를 구할 수 있었고, 때마침 한옥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도 방영되고 있어서 즐거운 마음으로 구옥 개조에 임할 수 있었죠.”

 

완전히 허물고 다시 짓는 게 아니라 지붕과 인테리어를 바꾸는 정도였기에 1개월 정도의 공정이면 충분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자 당초 계획이었다. 그러나 약속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당최 끝날 기미가 안 보이던 개조는 장장 6개월이란 시간이 흐른 후에야 실마리가 잡혔다.        

 

“어렵게 일꾼을 구했더니 일도 다 마치지 않고선 사라져 골머리를 앓았어요. 처음 겪는 일이라 상처도 많이 받았고 포기할까 생각도 했었죠. 하지만 다행히 이웃주민들과 지인들이 응원해 주신 덕분에 꿈꿔왔던 모습대로 개조해 낼 수 있었어요.”

본채와 별채로 나뉜 구옥은 최대한 옛 자재를 그대로 보존한다는 원칙 아래 공사가 진행됐다. 따라서 구옥에 쓰인 고재는 두 달간 정성껏 사포질해 다듬고, 기와 역시 기존 것을 그대로 살린 채 슬레이트 지붕이던 별채에만 새롭게 강판을 올려 주었다. 본채와 별채에 자리하던 마루는 모두 뜯어 낸 후 데크를 시공해 변화를 주었고, 전통 창호 역시 모던하면서 실용적인 폴딩 창호로 교체했다. 내부는 혜란 씨가 직접 천연염색한 천으로 곳곳을 둘렀고, 찻상은 지인들이 선물해 준 갖가지 공예품들을 더해 멋을 내었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구옥 개조라 모든 면면이 애틋하지만, 그 중에서도 별채 벽면을 드리운 색색의 벽화에 애착이 남다르다.

 

“구옥을 개조해 찻집을 연다고 하니 알고 지내던 예술가 분들이 찾아와 재능기부를 해 주셨어요. 조선시대 강원도 보자기를 모티브로 삼아 벽에 그림을 그렸는데, 그 덕분에 밋밋했던 벽이 화사해졌지요.”

 

벽면 곳곳을 채우던 그림은 이내 구옥 개조의 메인 컨셉이 되어 처마 끝, 벽체 모서리, 수돗가, 심지어 구르던 돌멩이도 색색의 그림들을 입고 찻집 곳곳을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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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만 통하는 애정 표현법

 

혜란 씨가 이곳에 들어온 후로부터 마을엔 소소한 변화가 찾아들었다.

“여기 분들은 얼마나 순박한지 몰라요. 저는 참 복 받은 사람이에요. 그 흔하다는 텃새 한번 겪어 보지 못했고, 그것도 모자라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있으니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처음부터 마음을 열고 다가와 준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차차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만의 방식으로 외지에서 온 혜란 씨를 한 가족처럼 품어주었다. 생색내는 일이 될까봐 누가 가져다 놓은 지도 모르게 이른 아침 온기가 채 가시지 않은 두부를 대문 앞에 두고 가기도 하고, 무더운 여름, 상큼한 제철 과일도 한 봉지 툭 무심하게 놓고 간다. 뿐만 아니라 이곳에 와서 이름 모를 들꽃 알기 삼매경에 빠진 혜란 씨를 위해 수시로 야생화를 옮겨와 찻집 곳곳에 심어두기도 하고, 찻상 위 꽃병에 소담스럽게 담아 선물하기도 한다. 많고 많은 사연들 중 의미있는 변화를 꼽자면 단연, ‘차 마실 산’의 상징인 벽화와 처마 끝을 수놓은 색색의 문양들이 어느새 마을의 랜드마크가 되었다는 것.

 

“동네 어르신 댁에 놀러갔는데 벽에 이전에 없던 그림이 그려져 있는 거에요. 알고 보니 우리집 담벼락에 그려진 그림을 보고선 예뻐서 따라 그렸다고 하더라고요. 또 다른 집에는 꼬마공주가 크레파스로 그린 귀여운 작품도 볼 수 있어요. 예전에는 돌멩이에 그림 그린다고 이상하게 보시던 분들이 이제는 손수 예쁜 돌로 구해다 주시니, 고맙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저를 한식구로 생각해 주시는 것 같아 마음 한켠이 뜨거워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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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의 의미를 물으신다면

햇수로 10년 째 채식생활을 하고 있는 그녀. 찻집의 메인 메뉴 역시 사과 슬러시ㆍ발효차ㆍ국화차ㆍ감잎차ㆍ십전대보차ㆍ배도라지생강차 등의 유기농 건강 음료와 양갱ㆍ망개떡과 같은 간식거리, 뱃속을 든든하게 채워주는 단팥죽ㆍ호박죽ㆍ연잎밥 등이다. 이 모든 것을 직접 수제로 만들어 내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그 보다 메뉴에 쓰이는 주 재료들이 모두 마을에서 나온다는 점이 남다르다.

 

“마당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쑥과 나물들을 캐 밑반찬으로 만들어 먹고요, 이웃 주민들이 정성으로 기른 작물들은 찻집 메뉴에 다양하게 쓰여요. 돈 주고 사오는 거라곤 간혹, 왜 고기반찬이 없느냐고 귀여운 투정을 늘어놓는 몇몇 손님들을 위한 멸치 구입이 전부네요.”

 

조미료가 일절 들어가지 않은 담백한 맛은 이곳을 방문하는 손님들이 가장 먼저 알아챈다. 이렇게 받은 인정은 이내 이웃주민들과 손님 간의 직거래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손님들은 싱싱한 농산물을 현지에서 직접 구매해 갈 수 있어 좋고, 이웃주민들은 정성껏 키운 작물들을 제 시기에 맞춰 판매할 수 있어 좋고, 저 역시 건강한 음식으로 찻집을 운영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요.”

 

혜란 씨는 찻집을 열기 전부터 계획했던 아담한 공방 만들기에 다시 속도를 내 조만간 도예와 천연염색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예정이다.

 

“귀촌으로 인해 생각지도 못한 값진 경험들을 하며 살아가요. 건축가가 꿈인 아이 역시 대안학교를 다니며 알게 된 ‘스트로베일하우스’ 건축에 요즘 푹 빠져있어요. 저 역시 이곳에서의 하루하루가 모두 흥미롭고 즐거워서 도통 헤어나올 수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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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찻집 ‘차 마실 산’

강원도 춘천시 신북읍 유포리 내에 위치한 전통찻집으로 각종 유기농 음료와 정성으로 갓 지은 연잎밥이 일품이다. 마당 곳곳에 널린 들꽃의 이름을 알려주는 돌멩이 이정표가 정겨움을 더하고, 직접 나물도 따볼 수 있어 편안하게 머물수 있다. 033-241-6200 http://cafe.naver.com/chamasil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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